사별 후 우울증 글을 보고....아는 친구가 썼던 글이 생각난다.
아내와 함께한 결혼식 날, 어머니는 내게 농담을 하셨다. “도둑놈들 욕했지만, 내 자식이 도둑놈일 줄은 몰랐네.” 어머니의 그 웃음 속에서 나는 나이 차이가 나는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낼 것을 다짐했다.
아내와 나는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었다. 퇴근 후 손을 잡고 편의점에 가서 핫바 하나 나눠 먹는 그 순간들이 소중했고, 아내는 물리치료사로서의 고된 일을 즐거워하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미소 띤 얼굴로 나에게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자신의 머리 위에 얹으며 “쓰다듬어 줘!”라며 장난스럽게 외치던 모습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생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암 3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오히려 나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아내는 “괜찮아”라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끝내 암과의 싸움을 이기지 못하고, 4년 전 그녀는 나를 떠났다...
의사가 호스피스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이 뇌까지 침투했다. 그 무렵부터 아내는 자신이 암 말기라는 사실도, 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를 돌봐주시는 이모님의 연락을 받고, 나는 무작정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집에 도착한 나를 보고, 아내는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과 함께, 아내는 마지막으로 내 앞에서 조용히 숨을 멈췄다. 그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모님은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아내가 눈을 깜빡이지 않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고 말했다. 마치 눈을 감으면 나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끝까지 견딘 것처럼 느껴졌다.
그 미소와 눈물, 그리고 마지막까지 함께해준 아내의 손길은 평생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떠나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한다 말해주던 그녀, 그리고 나 역시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한다고 대답해주었다.
마지막 일주일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던 아내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사랑을 말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사랑한다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내가 암 치료 초기, 혼자 있는 시간이 심심하다며 데려온 작은 실키테리어 한 마리.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 집안 구석구석에 여전히 살아있는 듯 울려 퍼지는 아내와의 추억들. 그리고 그와 함께 남은 건 죄책감과 상실감이었다. 내가 잘해주지 못한 것들, 후회만이 날 갉아먹었다.
첫해 동안 나는 아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며 아내에게 칭찬을 바라며 졸랐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항상 싸웠던 기억, 더 잘해주지 못했던 후회, 그리고 공허함뿐이었다. 밤이 되어 불 꺼진 방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1년 내내 모든 방의 불을 켜둔 채 지냈다.
그렇게 나는 아팠고, 울었고, 아내가 없는 현실을 외면하려 애썼다.
아내를 떠나보낸 첫 기일. 제사를 지내고 돌아온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 찼고, 수년간의 간병 생활로 인해 나의 인간관계도 대부분 끊겨 있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조차 부담스러워지면서 혼자가 된 나 자신을 더 뚜렷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기억을 지우려 했고, 아내와의 추억을 가두려 했으며, 애써 그리움을 피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피할수록 죄책감만 커져갔고, 그로 인해 우울증은 깊어졌다.
그런데 내 곁에 있던 강아지가 내 손을 핥으며 놀아달라고 보채고, 장난감을 물어오며 나를 깨워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강아지가 없었더라면 나도 어찌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 작은 존재가 내 삶을 붙잡아 주었다는 사실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3년이 지나자, 아내와의 추억은 조금씩 엷어졌고, 그리움도 서서히 멀어졌다.
이제 나는 어딘가로 떠날 때면 아내에게 “다녀올게”라고 인사하고, 돌아와서는 강아지를 안고 아내에게 다시 인사를 한다.
아픈 기억보다는 즐거운 추억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고, 언젠가 다시 아내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조금씩 담담해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우울증은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차분해졌을 뿐이다.
작년,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내를 떠나보낼 때와 달리, 나는 이번에는 조금 더 담담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아내와의 이별이 너무 갑작스러워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한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난 후, 나의 우울증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와의 감정적 연결이 나를 위로해주었고, 아버지가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혼자만의 아픔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우울증은 점차 나아졌다.
물론, 나는 여전히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잊을 생각은 없다. 그저 이제서야 다른 이별을 통해 조금씩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을 뿐이다.
가족을 떠나보낸 모든 이들에게, 나는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잊으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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